어제 성노동을 인정할 수 없는 이유들을 트윗했으나.
(자본주의에서의 확장적인 산업화가 될 가능성이 있는 성노동 인정 반대. 즉, 성매매는 축소시켜야 할 대상이라는)
추가로 한두 마디만 더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기본적 전제부터.
전제 1. 원치 않는 성관계 = 폭력 이다. (비유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폭력)
연인 사이에서든, 부부 사이에서든 원치 않는 성관계는 폭력이다.
남자가 하든, 여자가 하든 폭력인 것이다.
그래서 강제로 성관계를 맺는 것은 성폭력이며, 강간이 주요 강력범죄 중 하나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관계를 맺는 것은 왜 여타의 폭력보다 심한 폭력으로 인식되는 것일까.
전개 2. 원치 않는 섹스는 고도의 정신과 육체의 소모를 의미하며, 그 영향력이 섹스 이후에도 영향을 끼친다.
성노동자의 말을 옮기면, 섹스는 고동의 감정노동이다.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상대와 동의가 있는 섹스를 할 때도 체력을 시간당 높은 비율로 소비하며, 또한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고도의 긴장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그런 에너지 소모가 있기에 그들은 이른바, 거기에 해당하는 시간당 평균임금보다 높은 돈을 받는 것이다.
즉, 섹스를 성스러운 것.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이벤트, 아이를 낳기 위한 순결한 행위 등을 갖다붙이지 않더라도 섹스 자체는 원치 않을 수록 힘든 일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폭력적 행위는 돈으로 지불될 수 있는 것일까?
전개 3. 과연 자발적 폭력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이해를 돕기 위한 사례를 들 수 있다.
1. 갑과 을의 합의하에 이루어진 폭력.
<주먹이 운다>
주먹이 운다의 최민식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명동 한복판으로 나가 돈을 받고 맞아 주기로 한다.
그의 고객들은 그를 스트레스 해소 및 재미를 위해 그를 때리고, 그는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자발적 성노동자와 연관시켜 볼 수 있겠다.
자발적 성노동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섹스를 선택하고, 그 댓가로 돈을 받는다.
그 고객들은 성욕을 해소하고 배우자나, 연인 등으로부터 채우지 못하는 성적 판타지를 실현하기도 한다.
이 행위를 인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다음 사례를 보고 이야기해보자.
2. 갑과 을의 합의 없이 이루어진 폭력.
가장 인상적인 사례는 역시 최철원이다. 최철원은 한 노동자를 야구배트로 때리고 거액의 돈을 안겼다.
때리면서 그는 대당 얼마로 맷값을 매겼고, 이미 겁박된 상황에서 이 노동자는 고분고분 그 매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맷값은 다음 날 곧바로 지불되었다.
결과? 맷값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결국 이 사건은 최철원의 폭행으로 결론났다.
성폭력의 눈으로 보면, 강간을 한 이후, 보상금을 주면 되는 걸까? 당연히 동의할 수 없다. 돈을 주건 안 주건 그것은 폭력이기 때문이다.
인권적인 측면을 봐도 누군가를 폭행할 권리를 돈으로 산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는 행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빚 때문에 겁박된 상태에서 성매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폭행이며 억압이다.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부분만큼은 다들 인정할 것으로 생각한다.
3. 그렇다면 다시 1번으로 돌아가자.
합의된 폭력은 정당한가. 만약 최민식이 돈을 받고 맞아주기로 했는데, 거구의 상대가 그를 다치게 했다고 치자. 죽었다고 쳐도 좋다. 그때 그에게 최민식과 합의했기 때문에 죄가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상대가 돈을 받고 폭력당하는 것을 서비스로 제공했다고 해서, 그것을 산 이들에 대해서 처벌해서는 안 될까.
난 처벌해야 한다고 본다. 사람은 폭력적인 행위를 감내할 수는 있어도, 폭력적인 행위를 자행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나는 성매매 구매자 우선 처벌 원칙을 내세운 강력한 규제를 앞세운 법 개정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폭력적 행위를 돈을 내고 구매할 수 있는 재화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돈을 가진 사람들은 매일 밤 성매매 여성들과 그들이 원치않는 섹스를 할 수 있다는 뜻이고, 주어지는 금액에 따라 콘돔을 빼고 하는 것을 비롯한 대상 여성에게 신체적으로 위험한 성적 유흥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프리미엄 요금을 내면 롤플레잉을 할 수도 있겠지.
이것은 물질만능적으로 보면,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으나, 물질만능과 자본주의의 착취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나는 이것을 반대할 수밖에 없다.
나는 어떤 여성도(아니, 사람도) 원치않는 섹스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왜냐 하면, 자발적이건 뭐건 돈과 폭력을 당하는 것을 바꾸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4. 결론
자본으로 물리적 폭력이 정당화되는 것에는 반대하면서. 성적 폭력은 긍정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지금도 많은 성노동자들이 있으며 그들의 생계와 안전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권적인 측면에서 나는 얼마든지 그들을 돕는 행위를 긍정할 수 있다.
하지만, 성매매 비범죄화와 성노동의 인정 문제라면 나는 언제든 고개를 저을 것이다. 보편적 복지의 가능으로 그것으로 그들이 생계를 유지하기를 바란다. 굳이 폭력을 감내하지 않고도 말이다.
최철원 사건이 있을 때, 차라리 나를 때려라. 그 돈이면 내가 맞아주마 하는 댓글들도 많았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과 그런 행위를 용납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이다.



